그리고 바다에 도착하면 섬으로 가는 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고 그 배를 타기 위한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곤 했다. 폭풍이 불면 섬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지 못했다. 그러면 몇 날이고 항구의 도시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뒤숭숭한 뒷골목과 낯선 물건을 파는 기념품 상점과 사람들로 가득한 시장들. 항구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물건을 흥정하는 아랍인들과 키예프에서 온 큰 체구의 우크라이나인들 사이로, 중국인들과 베트남인들 사이로, 우리는 돌아다닌곤 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언제나 빵가게에 들어가 빵을 골랐다. 빵은 도시마다 다르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바게뜨나 호밀빵을 골라 커피와 버터와 치즈와 함께 먹었다. 얇게 썬 호밀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크림치즈를 다시 발라 먹는다. 혹은 세서미크림 위에 샐러드용 야채를 얹어 먹어도 좋고 각설탕을 싸먹어도 된다. 자동차용 커피머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커피 가루만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다면 좋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수없이 많은 것을 샀다. 미네랄워터, 커피, 커피 거르는 거름종이, 각 도시의 여러 종류의 빵들, 깨끗하고 건조한 타월, 비누, 면도용 거품, 새 속옷, 빵과 함께 먹을 각설텅, 치즈와 버터와 일회용 포크와 나이프, 각 지방도로가 자세히 나와 있는, 그러나 대개는 틀린, 그런 지도, 치약, 밀감과 사과, 얼굴에 뿌린느 수분 스프레이, 바닷가의 햇볓을 가려주는, 시골 여인들이 쓰는 챙 넓은 모자, 창터에서 산 폭인 넒은 긴 스커트, 시골 우체국에서 파는 지방관광엽서(우리는 아무 곳에도 엽서를 보내지 않으면서 고집스럽게 이런 것들을 사모으곤 했다), 담배, 짠맛이 나는 비스킷, 두통약, 지방 소식이 실린 신문과 각 도시의 헌책방에서 산 포켓 사이즈 소설책들과 지나간 호의 <보그>잡지. 국도의 휴게소나 낯선 거리의 가로등 아래나 공원의 벤치에서 우리는 여행 틈틈이 이런 것들을 읽었다. 혹은 이바나를 불빛 아래 세워둔 채 차 안에서 읽기도 했다. 여름이면 열린 창으로 날벌레들이 들어와 우리들의 그 은밀한 페이지들 위로 내려앉곤 했다. 우리는 신중하게 그 벌레들을 잡아 다시 놓아주었다. 그런 식으로 그 해, 폭풍이 가라앉고 배가 다시 출항하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들을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솔제니친을 읽으며 보냈다. 그러다가 우리의 마음은 변하여 섬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가기 위하여 항구도시를 떠나 내륙으로, 더 깊은 내륙으로 들어가곤 했다. 말라버린 분수와 폐쇄된 개인 박물관, 빈집들과 방치된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이름 없는 작은 도시들과 마을을 여행했다. 남부지방에서는 홍수를 만난 적도 있었고 저지대에서는 물에 갇혀버린 적도 있었다. 물에 갇힌다는 것은 상당히 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열대처럼 후덥지근한 열기가 우리의 피부를 남김 없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디에나 물이었고 흙과 나무와 책과 비스킷이 습기에 차 은은한 곰팡내를 풍겼다. 공기에서는 열병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 속에서 우리는 땀을 흘렸다. 처음에 새것이었던 우리의 침낭은 낡고 더러워졌으며 담요는 세탁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뼈를 관통하는 듯한 냉기가 차 안에서 느껴졌다. 입김이 하얗게 공기 중에 얼어붙었고 들과 숲은 그지없이 황량해진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길과 길들을 여행했다. 길은 영원히 반복되어 끝없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던 도시를 다시 여행했으며 이미 달렸던 고속도로와 국도를 다시 달렸으며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은 끊어진 도로와 파괴된 마을들을 여행했다. 비포장의 산길과 나환자들의 마을과 군사지역과 수몰 예정지의 스산하고 아름다운 마을들, 온 세상에 오직 섬광밖에 보이지 않는 번개 치는 한밤의 국도, 바다로 가는 길에 거짓말처럼 홀로 서 있던 당나귀, 지방도시의 작은 규모의 동물원들, 기타를 치고 있던 히치하이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그늘진 온천 휴양지, 그토록 길고 영원히 반복되는 길 위의 시간들. 지금도 나는 꿈에서 본다. 이바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때 이바나는 단순한 자동차, 기능을 담당해주는 운송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영혼을 가진 하나의 낡은 존재였다. 달력조차 가지지 않고 했던 긴 여행들. 우리는 달력상의 날짜를 알 수 없었고 해가 지면 밤이 온다고 생각했고 잎이 떨어지는 숲에 다다르면 겨울이 온다고 생각하며 트렁크에서 스웨터를 꺼내어 입고 커피를 끓였다.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커피를 마셨으며 담배를 피워대었고, 싫증날 때까지 레드 제플린의 를 들었다. 이바나의 플레이어는 최상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에게 노래란 지하철의 환풍기에서 흘러나오는 허덕거리는 숨소리, 그런 정도에 불과해도 좋았다. 우리는 환각에 빠진 채 를 계속해서 들었다. 숲 가장자리에서 잠이 깬 어느 날 아침, 안개가 주변에 가득하고 갓 낳은 따뜻한 작은 새알의 온기가 느껴지고, 연기냄새가 나고 숲의 언저리에 바람이 불고 두 개의 스웨터를 입고 침낭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도 추위가 느껴지고 어디선가 작은 짐승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야생오리들이 강으로 출발하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잿빛 새들이 절벽 위 둥지에서 날아오른다. 그런 아침, 밤 동안의 추위로 몸이 뻣뻣해진 채, 우리는 허밍과도 같은 기타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를 들었다. 우리는 그런 모든 날들을 이바나와 함께 했으며 그녀가 아닌 다른 자동차라면 도저히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지금도 믿고 있는 교류를 나누었다.